정태춘의 '5·18'에 깊은 감명…프리 연기 주제곡으로 선택
"오월 아픔에 공감…연기로 광주시민이 위로받을 수 있길"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한국 아티스틱 수영의 전설이 광주세계마스터즈 수영선수권대회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연기를 펼친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연기를 통해 광주시민을 위로하기 위해 14년 만에 선수 복귀를 결심했다.
주인공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아티스틱 수영 은메달 2관왕 유나미(40) 씨.
대회 출전 계기는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었다. 지난 2005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아티스틱 수영 코치·심판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유 씨는 지난 3월 남편을 통해 우연히 노래 한 곡을 들었다.
포크 가수 정태춘이 작사·작곡하고 박은옥과 함께 부른 '5·18'이었다.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한 소절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유 씨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두 아이의 엄마로서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소절에서는 오월 광주를 바라보는 부모의 감정에 공감했다고 한다.
유 씨는 지난달 31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슬픔, 아픔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면서 "한맺힌 가사와 어우러진 구슬픈 멜로디에 마음이 이끌렸다"고 밝혔다.
그는 "곡을 들으면서 문득 '아티스틱 수영 연기로 표현해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꼭 표현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났다"면서 "곡에 담긴 섬세한 감정을 어린 선수들이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마침 광주에서 마스터즈대회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직접 도전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14년의 공백기를 깨고 선수로서 아티스틱 수영 경기장에 다시 서겠다고 결심한 것은 올해 4월. 마스터즈 대회를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의 뜻깊은 도전에 이현애(47·여) 코치와 서혜승(30·여) 매니저가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대표팀 안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받던 현역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당장 훈련 공간을 구하는 일이 문제였다. 처음엔 지인이 운영하는 어린이 전용 수영장에서 적응·기본 훈련을 시작했다. 물속에서 배경 곡을 들을 수 있는 수중음향스피커는 커녕 마음 편히 움직일 수조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선수, 코치를 거쳐 심판까지 삶이 아티스틱 수영 그자체인 유 씨였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훈련 초기에는 '5·18'곡에 걸맞는 연기에 대한 욕심과 실제 표현 구사 역량이 차이가 커 마음 고생이 심했다.
유 씨는 "모든 선수들은 출전을 결정한 뒤 경기 운영에 유리한 곡을 고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곡에 맞춰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 갖는 의의 때문에 대회에 나선 것이여서 연기에 대한 고민이 더 깊었다"면서 "연기 구성부터 표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감각을 되찾아 의도한 연기의 대부분은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아무런 대가없이 취지에 공감하고 자기 일처럼 도와준 이 코치와 서 씨의 도움이 컸다. 특히 이 코치는 곡에 맞춰 안무와 기술 프로그램을 짰다. 바쁜 와중에 자신을 도와준 두 사람에게 유 씨는 고마움을 전했다.
선곡과 표현 주제가 폄훼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 유 씨는 "5·18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이 한창이여서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 있고, 누구나 공감할 슬픈 감정을 아티스틱 수영으로 표현하는 데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유 씨에게 이번 대회 성적은 중요치 않다.
그는 "끝나지 않는 아픔을 간직한 광주에서 공감과 치유의 연기를 펼치는 데만 집중할 것이다. 2분 안팎의 짧은 연기를 통해 광주시민들이 위안받고 힘을 얻길 바란다.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달라"고 강조했다.
한국 아티스틱 수영의 맏언니로서 "후배들에게 '아티스틱 수영은 비인기종목, 선수 생활이 짧다'는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보이고 싶다. 후배들이 용기잃지 않고 명맥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 씨가 지역민들에게 선보일 '오월 광주'는 오는 8일 광주 서구 염주종합체육관 아티스틱 수영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아티스틱 수영 프리 예선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