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술·담배하기 편해"…시대착오적 금융권 채용 문화
"남자가 술·담배하기 편해"…시대착오적 금융권 채용 문화
  • 주택건설신문
  • 승인 2018.10.31 19:36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블로그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한금융지주 임직원 채용비리 혐의 기소
성비 3대1 맞추려고 점수 조작한 혐의 등
하나은행 전 면접관 "남자직원 선호 맞다"
"술 마시거나 담배 피우며 얘기하기 편해"
업계 만연 女배제 분위기 여실히 드러나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앞에서 '삼성 한화 금융계열사의 채용성차별 은폐 규탄' 및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2018.10.31.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앞에서 '삼성 한화 금융계열사의 채용성차별 은폐 규탄' 및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2018.10.31.

조인우 김온유 기자 = 금융권 성차별 채용 행태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편하다"는 이유로 남자를 선호하고 설정해놓은 성비를 맞추기 위해 점수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구시대적 행태가 만연해있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주진우)는 조용병(61)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 6명을 업무방해, 남녀고용평등법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들은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에 걸쳐 지원자 101명의 점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데, 외부 청탁이 들어온 지원자나 부서장 이상 자녀들 합격 외에도 남녀 성비를 3:1로 맞춰 채용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권의 성차별적 채용 분위기는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특별 검사를 통해 적발됐다.

 KEB하나은행은 2013년 하반기 신입채용에서 서류합격자 비율을 남녀 4:1로 정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남성 지원자를 합격시킨 정황이 포착됐다. 최종 임원면접에서도 여성 지원자 두 명을 떨어뜨리고 남성 지원자 두 명의 순위를 올려 합격시킨 의혹도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15년 남성을 더 많이 뽑기 위해 서류전형에서 남성 지원자 113명의 점수를 높이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춘 정황이 드러났다. 채용비리에 관여한 국민은행 인사 관계자들에게는 지난 26일 무더기로 징역형(집행유예)가 선고됐고, 국민은행에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국민은행의 성차별 채용에 대해 "남성 직원이 더 필요해서 남성 지원자를 더 뽑았다고 주장하지만 업무 내용에 비춰 볼 때 특별히 남성이 더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남성 지원자 선호·여성 지원자 배제' 기조는 이처럼 채용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반영돼 실현되는 수준이지만 그 이유는 조악하기까지 하다.

 지난 2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 김진희 판사 심리로 열린 하나은행 채용비리 변론기일에서 나온 증언이 그 단면이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하나은행 직원 홍모씨는 거래처에서 의사소통이 편하다는 이유로 남성 행원을 더 좋아하느냐는질문에 동의하면서 "남자 직원들이 편한 얘기를 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홍씨는 "남자 직원들끼리 술을 마시거나 업체에서 찾아와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보다 남성 직원들이 편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씨는 2013년과 2014년 면접관으로 하나은행 채용 과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홍씨의 이 같은 발언은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채용 현장에서 여성이 업무와 관계 없는 기준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드러낸다.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에 있어 성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7조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는 술, 담배 등의 이유에 대해 "여성이라서 업무능력이 폄하되는 사례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그런 것은) 업무능력과는 애초에 관계도 없다"고 개탄했다.

채용비리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KEB하나은행 함영주(가운데) 은행장이 1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으로 영장질실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13~16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사외이사나 계열사 사장과 관련된 지원자를 사전에 공고하지 않은 전형 방식으로 뽑고, 임원 면접 점수를 높게 주는 등의 방법으로 부정 채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18.06.01.
채용비리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KEB하나은행 함영주(가운데) 은행장이 1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으로 영장질실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13~16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사외이사나 계열사 사장과 관련된 지원자를 사전에 공고하지 않은 전형 방식으로 뽑고, 임원 면접 점수를 높게 주는 등의 방법으로 부정 채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18.06.01.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은 31일 오전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과 한화 금융 계열사가 이를 은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금융권 성차별 근로감독 중간 결과'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한화생명보험, 한화손해보험이 노동부로부터 3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채용 서류 미보존이 이유다. 남녀고용평등법 제33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채용 서류를 3년간 보존하고 이를 어길 시 3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노동부가 삼성과 한화 금융계열사를 성차별 의심 사업장으로 분류하고 근로감독에 나섰으나 기업 측에서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이를 파악할 수 없었다.

 공동행동은 "삼성과 한화그룹의 금융계열사에서 채용 성차별이라는 위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자료 폐기라는 또 다른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저지른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동부가 그 시간을 제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의 채용 성차별 은폐 행위에 대해 300만원의 과태료 처분으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되며, 성차별 의심사업장에 대해 강력한 조사 및 수사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금융권은 자정적 노력에 힘쓰고, 정부는 작금의 채용 비리 핵심이 성차별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반드시 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 의무화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이런 세상에서 여성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한들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며 "여성은 약자가 아닌 보편적인 노동권을 가진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채용부터 진입로가 막혀 있는 여성들은 결국 평생을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며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회사명 : 주택건설신문
  • (100-866) 서울 중구 퇴계로187(필동1가 국제빌딩( 2층)
  • 대표전화 : 02-757-2114
  • 팩스 : 02-2269-51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향화
  • 제호 : 주택건설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4935
  • 등록일 : 2018-01-17
  • 발행일 : 1996-06-20
  • 회장 : 류종기
  • 발행인 겸 편집인 : 이종수
  • 편집디자인 : 이주현
  • 주택건설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주택건설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c@newshc.kr
ND소프트